[잡학사전]
애창곡 뜻 '십팔번'의 유래


가부키 배우 배출로 유명한 이치카와 가문의 18가지 레퍼토리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일본에서 기원한 것이 적지 않다. 지면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언급하겠다.

1970~1980년대 남자대학생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놀이의 하나로 당구를 들 수 있다. 한국 대학생들의 당구 행태를 보면 보통 4명 정도가 2명씩 편을 갈라 내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흔히 ‘겐페이’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관용발음은 ‘겐뻬이’지만 여기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겐페이’로 쓴다.

‘겐페이(源平)’는 일본 역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1185년 일본의 패권을 둘러싸고 당시 일본 양대 세력인 미나모토(源) 집안과 다이라(平) 집안이 단노우라(壇の浦)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미나모토 집안이 승리해 가마쿠라(鎌倉)에 일본 최초의 막부를 열었다.

라이벌 집안은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두 가문의 패권 다툼은 세간의 눈길을 끌 만한 흥밋거리가 많다. 처음에는 다이라 집안이 이겨 권력을 잡았다. 미나모토 집안은 총수인 요시토모(義朝)가 죽임을 당하고 두 아들 요리토모(賴朝)와 요시쓰네(義經)는 유배를 당한다. 1180년 요리토모·요시쓰네 형제는 병력을 일으켜 5년간 복수전을 벌인 끝에 원수 다이라 집안을 멸망시킨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두 가문의 패권 다툼은 일본 역사의 대표적인 라이벌전으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편을 갈라 하는 시합에 ‘겐페이’라는 이름을 애용했다. 겐페이라는 발음은 미나모토(源)의 일본한자음 ‘겐’과 다이라(平)의 일본한자음 ‘헤이’를 합친 것이다. ‘겐헤이’가 아니라 ‘겐페이’로 부르는 것은 일본어 법칙에 따른 것이다.

한국인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단적인 예가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일본에서 건너왔으나 한국에서 더 꽃을 피우고 있는 문화다.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답게 어딜 가든 ‘카수’가 많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람마다 애창곡도 다양하다. 애창곡을 ‘십팔번’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애창곡을 십팔번이라고 부르는 것도 일본에서 비롯됐다. 일본에는 가부키(歌舞伎)라는 고전연극이 있다. 이치카와(市川) 가문은 가부키 배우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산세이도(三省堂)에서 펴낸 사전에서는 이치카와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18종의 교겐(狂言·가부키 막간극)을 ‘가부키 십팔번’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로 이른바 ‘오뎅바’가 있다. 오뎅은 흔히 우리말로 어묵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우리말의 어묵과 일본어의 오뎅은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른 말이다. 기본적으로 어묵은 재료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가마보코’다. 반면 일본에서 오뎅은 요리 이름이다. 두부·어묵·무·곤약 등을 삼삼하게 간을 맞춰 끓인 냄비 요리를 오뎅이라고 한다. 오뎅을 어묵이란 말로 바꿔 쓰기 전에 한국에서는 오뎅이란 말로 어묵(가마보코)과 어묵냄비요리를 아울러 지칭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오뎅’(요리)을 ‘간토’라고 부르는 곳도 있었는데 이는 일본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오뎅’(요리)을 ‘간토(關東)다키’ 또는 ‘간토니(煮)’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부산 등지에서 이런 표현을 많이 썼다.

으깬 생선살을 기름에 튀긴 어묵은 우리가 일본에서 배웠지만, 한국과 일본의 어묵문화는 차이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어묵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포장마차나 분식집에서 꼬치어묵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일본은 ‘오뎅’을 파는 곳이 한국보다 적은 편이다.

출처 : 주간조선 20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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