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자주 틀리는 한자표기들


천기누설 = 天氣漏泄(X) 天機漏泄(O),
어떤 것을 지켜내다 = 守城(X) 守成(O)

우리 사회에서 아무래도 한자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한자는 한글표기가 보편화되면서 도태될 위기에 처했으나 최근 중국이 세계 양대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다시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학습만화인 ‘마법천자문’이 800만부나 팔려나갔다.

한자실력이 다시 중요해지는 요즘 눈에 자주 띄는 한자표현 중 틀린 사례를 지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지적할까 한다.

요즘 역술가들이 ‘天氣漏泄’이라고 한자로 쓴 광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 표기로는 ‘천기누설’이 된다. 우리나라 역술가들은 ‘하늘의 기밀 또는 조화의 신비’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인간의 운명은 당연히 하늘의 기밀에 속하므로 천기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뜻으로 ‘천기’라는 표현을 쓴다면 앞의 한자 표기가 틀렸다는 점이다. 이 때는 ‘天機’라고 써야 한다.

機라는 한자는 우리 사회에서 기계(機械)의 ‘틀’이란 뜻과 기회(機會)의 ‘기회’란 뜻 정도만 널리 알려져 있으나 알고 보면 ‘비밀’이라는 뜻도 있다. 참고로 기밀(機密)은 ‘외부에 드러내서는 안 될 중요한 비밀’이란 뜻으로 ‘군사기밀’ 식으로 많이 쓰인다.

天氣는 국어사전에 두 가지 뜻풀이가 있다. 하나는 ‘하늘에 나타난 조짐’이고 또 하나는 ‘날씨’다. 하늘에 나타난 조짐은 기상학의 영역이다. 참고로 일본어에서는 날씨를 ‘덴키(天氣)’라고 한다.

‘守城’이란 한자도 자주 틀리는 표현이다. ‘창업(創業)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할 때 수성의 한자를 ‘守城’이라고 쓰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이때는 ‘守成’이라고 써야 한다. 守成의 뜻이 ‘조상들이 이뤄 놓은 일을 이어서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守城은 문자 그대로 ‘성을 지킨다’는 뜻으로 ‘성을 공격한다’는 뜻의 ‘攻城’에 대응하는 말이다.

‘부존자원’이란 말도 자칫하면 뜻을 정반대로 이해하기 쉬운 말이다. 부존자원은 한자로 ‘賦存資源’이라고 쓴다. 사전 정의는 ‘경제적 목적에 이용할 수 있는 지각 안의 지질학적 자원’이다. 부존자원은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빈약해서 사람이 자원이다”는 식으로 많이 쓰인다. 한자를 하나씩 살펴보면 ‘賦’는 ‘주다’란 뜻이다. ‘存’은 알다시피 ‘있다’라는 뜻이다. 이것만 갖고는 감이 잘 안 잡힐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賦存’을 ‘천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천부적’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타고난 뛰어난 재능을 가리킬 때 ‘천부적 재능’이란 관용적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천부적(天賦的)’은 문자 그대로 ‘하늘이 준’이라는 뜻이다. 부존자원을 쉽게 설명하면 ‘원래부터 있는 자원’쯤 된다.

수년 전 부존자원과 관련해 해프닝이 있었다. 모 언론사에서 ‘A기업이 해외 유전을 시추한 결과 기름이 없는 걸 확인했다’고 보도해서 해당 종목의 주가가 급락하자 A기업이 해명 자료를 내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당초 이 회사의 보도자료에는 ‘부존자원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돼 있었으나 해당 기자는 부존(賦存)자원을 부존(不存)자원으로 잘못 해석하고 기름이 안 나왔다고 오보(誤報)를 쓴 것이다. 이 언론사는 정정기사를 썼으나 첫 기사를 믿고 주식을 투매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요즘 ‘미리 예약(豫約)’이란 표현도 자주 쓰인다. 이 말도 동어 반복으로 틀린 표현이다. 그냥 ‘예약’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의 한자실력이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출처 : 주간조선 2009.08.31


맨위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