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민들레 바람에 흔들릴 적에 -詩 김설하
언제나 그랬듯 구시렁대며
티끌 하나 남기지 않겠노라 싹싹 쓸어대는 
싸리 비질이 여느 때보다 호기롭던 날이다
콘크리트로 빽빽이 골목을 메우는 
늙은 남자의 대머리가 유난히 빛을 내는
햇살도 지랄 맞게 좋았던 거라
지면의 숨통을 끊어 놓을 듯 다지고 다지더니 
쏘아보는 동공에 쳐진 거푸집은 그제야 철수하고 
만면의 미소가 탄탄한 침묵으로 굳었다
바람도 밀쳐낼 단단함에도 
성근 햇살은 다녀가곤 하더니
사는 일이 수월찮아도 생명은 위대하다 했던가
친근한 눈길 한번 준 일 없는 골목에 
하얀 민들레가 정적을 밀어내며 해사하게 웃는다
눈빛 맞추느라 다리를 구부리자
비어져 나온 허리춤에 햇살이 앉아 갸우뚱거린다
괜스레 눈꺼풀 팔랑대며 이슬이 오르고
쌉싸래한 향내가 명치를 누른다 
        골목은 여전히 정적이 감돌지만 산다는 것은 이토록 질긴 일임을 저무는 해거름이 아쉬운 건 꽃뿐이 아니라고 어디론가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 이따금 바람이 말을 건다 늙어지는 인생 잠시 붙들어 놓고 함께 흔들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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