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장남이 재산 모두 물려받는 전통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 멀어져
‘작은 거인’ ‘가왕(歌王)’ 등의 애칭을 갖고 있는 조용필의 노래도 일본에 많이 소개됐다. 특히 그의 첫 히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일본 톱가수들까지 앞다퉈 부를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노래방 같은 데서 이 노래의 일본어 가사를 들어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원곡 가사는 형제 간의 이별을 그렸는데 일본 번역곡 가사는 연인 간의 이별로 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동백꽃 피는 봄인데 당신(貴方·あなた)은 돌아오지 않네.(중략)보고 싶은 당신.” 일본어에도 형제(兄弟)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 연인(戀人)을 뜻하는 당신으로 바뀐 것일까? 답은 상속 형태가 달랐던 두 나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모계사회 전통이 강한 나라다. 조선시대의 기본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을 보면 ‘부모의 노비와 전답은 자녀가 균분한다’고 돼 있다. ‘출가외인’이라고 부르던 결혼한 딸까지도 상속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통시대 일본에선 대체로 장남이 부모의 유산을 상속 받았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가(家)’의 존속 및 승계를 중시했는데 재산을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집안의 물질적 토대가 약해지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로 장남에게만 재산을 물려준 것이다. 그래서 전통시대 일본에서 장남의 권위는 대단했다. 아들들은 아버지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큰형은 어려워하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부모의 경우 아무리 노여움을 사도 어버이이기 때문에 탈이 적지만 큰형은 형제인 데다 형수라는 외인(外人)이 가세하기 때문에 한번 밉보이면 후환이 두렵기 마련이다. 따라서 전통시대 일본의 차남 이하 아들들은 부모가 사망하면 대체로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는 부모로부터 숟가락 하나도 못 받은 채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의 재산을 다 물려받은 큰형 밑에서 소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향살이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약되던 당시로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남몰래 형제집 앞에 곡식을 갖다 놓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의 한국식 우애가 싹트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속담까지 일본에는 버젓이 있다. “형제는 남이 되는 시초(兄弟は他人の始まり)”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때문에 형제 간의 이별을 그린 한국노래를 직역하면 대부분의 일본인에겐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가 남녀 간의 이별로 바뀐 것이다. 출처 : 주간조선 2009.0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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