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중국, 고구려 비하해 줄여 부르거나 ‘하구려(下句麗)’라고 하기도 고구려는 한자로 ‘高句麗’라고 쓴다. 고구려에 대한 한민족의 숭배가 얼마나 컸는지는 태조 왕건이 새 왕조의 이름을 ‘고려(高麗)’라고 지은 데서도 알 수 있다. 왕건의 고향인 개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땅이었고 왕건은 고구려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고려’라는 이름을 쓴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와 고려는 전혀 다른 말인가? 이 말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기본적으로 고구려는 삼국시대, 고려는 중세에 각각 존재했던 왕조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다른 말이라는 해석이 맞다. 그러나 고구려와 고려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존재할 때는 동의어이기도 했다. 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사례 하나. 727년 발해 2대 임금 무왕(武王)은 일본에 사절단을 보내 일본 국왕에게 국서를 전달했다. 무왕은 “고려의 옛터를 회복하고 풍속을 이어받았다”고 밝히며 고려 국왕을 자처했다. 이때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려가 들어서기 전이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의미한다. 무왕만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 중국의 사서(史書)에는 고구려를 고려라고 표기한 대목이 무수히 많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예전부터 중국인들은 이웃나라를 비하하는 습성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몽골을 한자로 ‘몽고(蒙古)’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蒙古’는 ‘무지몽매하고 고루한 놈들’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하도 북방민족에 시달린 탓이리라. 중화사상에 젖은 중국인들의 눈에 천자의 나라인 중국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국력이 강대한 고구려가 곱게 비칠 리 없었다. 정식 국호는 ‘고구려’지만 중국인들은 한 글자를 생략하고 ‘고려’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바탕에는 “우리 중국을 괴롭히는 오랑캐의 국호를 일일이 다 불러줄 필요는 없다”는 감정이 깔려 있다. 이 때의 ‘고려’라는 호칭이 모두 감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삼국시대에 ‘고구려=고려’라는 등식이 성립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얼마나 싫어했느냐 하면 ‘고려’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예 제멋대로 이름을 바꿔 부른 사례까지 있다. 왕망의 ‘하구려(下句麗)’ 해프닝이 그것이다. 한나라는 중국의 대표적인 왕조인데 전한과 후한으로 나뉜다. 중간에 외척 왕망(王莽·기원전 45년~서기 23년)이 왕위를 찬탈해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국호는 신(新·서기 8~23년)이다. ‘후한서’ 권13 외효공손술열전( 公孫述列傳)의 주석을 보면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불렀다”는 대목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왕망은 흉노를 치기 위해 고구려에 파병을 요청했으나 고구려가 거부하자 고구려를 낮춰 하구려라고 제멋대로 불렀다. ‘고구려=고려’의 흔적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일본에는 ‘高麗’라는 이름이 붙은 명칭이 많다. 高麗의 일본 발음은 ‘고마’다. 한 예로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는 ‘고마(高麗)신사’ ‘고마무라(高麗村)’등의 건물과 지명이 있다. 이때의 고마(高麗)는 고구려를 가리킨다. 고구려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역사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 출처 : 주간조선 2009.07.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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