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갈색은 간 질환, 회색은 담도 폐쇄, 자장면 색은 위장관 출혈 의심해야”
농사를 짓던 우리 민족에게 똥은 결코 지저분함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꿈에 똥을 밟으면 재수가 좋다’고 했던 이유도 똥을 더럽게 생각하지 않고 생산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산은 곧 돈으로 직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반면 보릿고개로 대표되던 가난을 빗대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했다. 가난하면 그만이지, 애꿎은 항문이 왜 찢어지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물만 먹으면 똥 덩어리가 굵어지고 물기가 없이 딱딱해져요. 똥이 되직하게 나오니까 항문이 찢어지는 거죠. 사람은 초식동물이 아니라서 섬유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거든요. 대장 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다 똥으로 나오는 겁니다. 섬유질은 스펀지처럼 수분을 흡수하면서 부풀어 오르지요. 섬유질이 똥의 양을 많게 하거든요. 그러니 섬유질만 먹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식이섬유는 몸 안에서 소화되지 않고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대변의 발효를 돕고 해로운 성분까지 함께 끌고 나가는 청소부와 같다. 변을 부드럽게 해서 배변을 도와주는 식이섬유에는 과일, 해조류, 콩류가 있고, 변의 양을 늘려 변비 예방에 효과가 있는 식이섬유로는 양상추, 오이, 브로콜리, 양배추 등이 꼽힌다. 식이섬유를 먹을 땐 평소보다 물을 더 많이 먹어야 배변에 도움이 된다.
삶은 똥이다? 서울대 의대 박재갑(朴在甲·60) 교수는 지난 30년간 6000여 회 수술을 했는데, 대장암 수술만 5000회 이상 집도한 대장항문암의 최고 권위자다. 대장이 전공이므로 그에게 변(便)은 하루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교수는 “삶이 똥을 닮았다”면서 “입으로 들어간 건 반드시 똥으로 내놓아야 하듯이 삶 역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고 했다. “똥을 보면 그 사람의 섭생을 알 수 있죠. 똥이 ‘굵다’ ‘가늘다’ ‘되직하다’ ‘묽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배변량이 적어요. 배변량이 식이섬유 섭취량과 비례하거든요. 가공식품을 많이 먹고 채식을 적게 하면 섬유질이 부족해서 똥을 적게 눠요. 육류만 먹으면 똥의 볼륨이 작아져요. 대장은 영양가 높은 음식물이 지나가면 천천히 내려보내요. 흡수할 것이 많거든요. 영국에서 실험을 했어요. 육류 위주로 먹게 했더니 하루에 똥을 100g 정도 눴답니다. 그런데 채식 위주로 바꾸니까 배변량이 육식 먹을 때보다 배가 늘었다고 해요.” 건강한 성인은 변의 양이 하루 200g 이하. 한 컵 정도다. 의학적으로 ‘변비’란 배변량이 하루 35g 이하, 일주일에 2번 이하 화장실에 가는 상태이고, ‘설사’는 배변량이 하루 300g 이상, 하루에 4번 이상 화장실에 가는 경우를 말한다. 배변량은 국민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육식을 즐기는 서유럽의 경우 100g밖에 안 되지만 파푸아뉴기니 국민은 하루 배변량이 무려 1kg에 달한다고 한다. 채식 위주의 문화권에서는 배변량이 많고, 육식 위주의 문화권에서는 섬유질 섭취의 부족으로 배변량이 적은 편인데, 파푸아뉴기니 국민은 주식으로 채식만 고집하기 때문에 배변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50년대 미국인이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배변량이었다’는 소문에는 근거가 있다. 가난과 기근으로 나물만 먹던 그 시절 한국인의 배변량은 지금의 3배쯤 됐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이 동남아시아인, 일본인과 함께 치질 발병률 세계 1위로 꼽혔는데 이 또한 섬유성 식품을 많이 먹어 배변량이 많았던 탓이라고. 똥 색깔 변하면 상황 심각 입에서 항문까지의 길이는 약 9m. 어떤 음식이든 1박2일이면 변이 되어 배출된다. ▼ 자신의 똥을 관찰하는 사람이 그리 많을지 의문입니다.
▼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고 대변의 색깔이 바로 달라지진 않잖아요. 만일 자장면 색깔의 똥을 눴다면 문제가 달라요. 흑변이 나오면 상부 위장관의 출혈을 의심해봐야 해요. 또 혈액이 위장관을 지나면서 위산이나 장내 세균에 의해 흑변으로 바뀔 수도 있고요. 방치하면 소화성 궤양 혹은 위암의 진단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빈혈을 치료하려고 철분제를 복용했거나 감초 식품을 먹어도 흑변이 나올 수 있어요.” 단, 박 교수는 “(똥의) 냄새가 고약하고 끈적거린다면 문제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건강하면 똥 냄새가 고약하지 않아요. 똥 냄새는 자연의 냄새잖아요. 닭똥 특유의 냄새가 있듯이 인분에도 특이한 냄새가 있어요. 하지만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닙니다. (똥 냄새는) 대장 내에 있는 세균 때문에 나요. 똥 냄새가 심한 사람은 장 안에 세균이 득실거리고 있는 겁니다. 대장에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나 올리고당 같은 좋은 균이 많으면 냄새가 심할 리 없어요.”
시원하게 한 덩어리로 그는 “점심에 청국장을 먹었다”면서 청국장과 변에 대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 사람들, 청국장 좋아하거든요. 콩을 발효시켜 만든 게 청국장 아닙니까. 콩을 발효시킬 때 냄새가 얼마나 고약합니까. 서양인은 이 냄새를 ‘똥 냄새 같다’고 하잖아요. 똥 냄새와 청국장 냄새가 이웃사촌쯤 됩니다. 똥이든 청국장이든 세균이 발효돼 냄새가 나거든요. 좋은 세균은 발효되고, 나쁜 세균은 부패하잖아요. 대장 내에 좋은 세균이 많아야 냄새 덜 나는 똥을 누게 되는 거죠.” 대장에는 500종이 넘는 세균이 살고 있다. 대장균은 음식물 찌꺼기를 분해해서 비타민 B, 비타민 K, 아미노산 등을 몸에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배탈이 나거나 설사를 할 땐 몸에 이로운 세균보다 해로운 병원성 균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 대변의 색깔로 여러 질병을 의심할 수 있겠군요. 똥이 영어로는 ‘덩(dung)’이다. 발음이 비슷하지 않은가. 대변 볼 때 ‘똥’ 하고 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속설이 있다. 동양에서는 ‘쌀이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라는 의미로 분(糞) 혹은 변(便)이라고 했다.
▼ ‘똥’이라고 서슴없이 말하시네요. 박 교수는 “똥과 친해지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옛날 어른들이 ‘똥이 굵어야 잘산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에요. 건강한 사람의 똥은 바나나 모양이면서 굵고 황금색입니다. 또 뒤끝을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한 덩어리로 떨어집니다. 몸이 안 좋거나 허약해지면 국수 가락처럼 흐물흐물하게 떨어져요. 요즘 여성들,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빼빼 마른 똥을 눠요. 먹은 게 없으니 대장에서 똥이 뭉쳐질 리가 없겠지요. 또 폭식하고 폭음하면 대장에서 수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무른 똥을 눕니다. 무른 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구리겠지요. 육류, 커피, 술이 주원인입니다. 과음을 하면 알코올이 소장과 대장의 운동을 자극해서 설사를 일으켜요.”
▼ ‘니 똥 굵다’는 말이 ‘너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너 건강하다’는 뜻이군요.
방귀 소리 크면 건강 건강한 사람의 대변은 굵기가 2cm, 길이는 10~15cm라고 한다. ▼ 태어날 때부터 변이 가는 사람도 있는데요.
▼ 대장에 문제가 생기면 방귀 냄새부터 고약해진다고 하던데요.
▼ 방귀 소리가 큰 사람이 건강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은 하루에 방귀를 13회 이내로 뀐다. 최고 25회까지 정상이라고 한다. 방귀는 질소, 이산화탄소, 수소, 메탄 따위로 구성돼 있어 무색무취다. 하지만 음식물과 지방산 등의 분해물질인 암모니아가 대변과 방귀냄새를 만든다. 대변의 냄새로 질병의 유무를 구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하지만 방귀를 너무 자주 뀌거나 너무 오래 참아 복통이 심해진다면 이는 가스증후군의 일종이다. 유제품이나 양파 당근 바나나 셀러리 등은 방귀의 횟수를 늘리고, 쌀 생선 토마토 등은 방귀의 횟수를 줄인다고 한다.
박 교수는 “변비에서 설사로, 다시 변비로 장기간 반복된다면 건강의 적신호”라고 귀띔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해요. 기름진 육류를 먹고 폭음을 하니까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더 악화되죠. 변비-설사의 반복이 심하면 대장 어딘가에 혹이 있지 않나 의심해봐야 합니다. 대장에 혹이 있으면 똥이 일시적으로 못 내려가요. 똥이 안에서 썩으면 안 되니 설사를 통해 내보내는 겁니다. 토끼 똥처럼 힘을 줘야 겨우 나오던 것이 갑자기 폭격하듯 물똥으로 나오는 거죠. 요즘 대장에 혹 있는 사람이 참 많아요.” 평소와 다른 변은 병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똥을 누고 싶어 화장실에 갔는데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리 힘을 줘도 안 나오면 문제가 있는 거죠. 항문에는 외괄약근과 내괄약근이 있습니다. 내괄약근은 무의식 상태에서도 오므리고 있는, 지치지 않는 근육입니다. 위쪽에서 똥이 내려오면 자동으로 열립니다. 직장은 항문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방귀인지 설사인지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직장 쪽에 혹이 생기면 뭔가 묵직한 게 자꾸 느껴져요. 꼭 똥 덩어리 같단 말이에요. 그러면 자꾸 변의를 느끼는 거죠. 그런데 (화장실에) 막상 가면 안 나와요. 그 정도로 변의를 느낀다면 꽤 큰 혹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장암은 한 해에 1만3000여 명에게 발생하는 암이다. 전체 암의 11.2%로 발생률이 네 번째로 높은 암이다. 남성과 여성의 발병 비율은 반반.
똥물 먹으면 큰일 난다 ▼ 대장에 종양이 생겨도 당장 느낌이 오진 않는 것으로 압니다.
▼ ‘똥물 먹고 병 치료했다’는 옛날 얘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 후지타 고이치로가 쓴 ‘쾌변천국’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똥은 사람의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잉여물을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식물이 빛과 양분을 흡수해서 에너지를 만들고는 필요 없는 걸 배출하는 데 이것이 바로 산소다. 인간은 식물의 배설물인 산소와 함께 다른 영양분을 섭취하고 똥을 배출한다. 이 똥은 거름이 되어 식물에 섭취된다. 사람과 똥과 지구는 한몸이다.’
▼ ‘인간은 태어나서 새까만 똥을 누고, 죽기 전에도 새까만 똥을 눈다’고 하던데요. 박 교수는 “신생아도 성인처럼 변 색깔이 몸 상태를 나타낸다”고 했다. “신생아의 똥에 코 같은 것이 섞여 있다면 장염일 가능성이 커요. 피가 섞여 있다면 세균성 장염이나 장출혈을 의심해야 하고요. 또 순두부처럼 흰 망울이 섞여 나오는 걸 생똥 혹은 산똥이라고 하는데 분유의 유지방이 응고된 탓입니다. 염소 똥같이 딱딱한 똥을 누면 먹은 양이 부족하거나 섬유질이 부족하다는 신호예요. 옛날엔 쌀뜨물처럼 뿌연 똥을 누기도 했는데, 이는 콜레라에 걸릴 경우 나오는 똥입니다. 흰색 똥을 누면 담도가 막힌 경우이고요.”
잘 비워야 오래 산다 박 교수에 따르면 죽기 바로 전 똥의 색깔이 신생아의 배내똥과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죽을 사람이 잘 먹는 경우는 드물어요. 어제 똥을 누고 오늘도 똥을 누다가 죽지는 않거든요. 지병이 악화됐든 숙환이든 며칠간 못 먹다 가요. 사람이 일주일 이상 곡기를 끊으면 농축된 찌꺼기가 흡수돼서 색깔이 변합니다. 항문까지 내려오면 새까맣게 타버리듯이 흑변이 되는 거죠. 암 환자도 며칠씩 못 먹다가 가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그로부터 똥 얘기를 듣다보니 입에서 항문까지가 하나로 연결된 통로이듯이 똥이 삶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에 백혈구가 적어지면 균 때문에 죽어요. ‘똥에 균이 많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 속에 균이 많다는 건 잘 몰라요. 침 속에는 똥보다 많은 균이 있어요. 단위당 수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의 표현으로 키스를 하지 않습니까. 키스를 하면서 침 속에 균이 많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잖아요. 똥은 그 사람의 섭생과 배변 습관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음식물 찌꺼기입니다. 밥 따로 똥 따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똥이 더럽고 구리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은 은퇴하고 30년 이상 더 살아야 해요. 오래 살려면 자신의 똥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의 식습관에 비춰 대장내시경 한 번 안 해보고 오래 살기를 꿈꾸는 건 말이 안 되죠. 인간이 가장 쾌락을 느끼는 순간이 배설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오줌 눌 때, 똥 눌 때, 사정할 때… 솔직히 얼마나 시원합니까. 다 같은 원리입니다. 참다 배출하면 행복하기까지 하잖아요. 먹는 것만큼이나 비우는 것도 중요해요. 잘 비워야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출처 : http://www.donga.com 07/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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